역사와 정신문화 (History & Spiritual)

역사와 정신문화 (History & Spiritual)

KRANG 0 9
진짜 대한민국

9,000년 역사의 국통맥

HISTORY — 환국에서 대한민국까지 이어지는 유구한 역사와 저력

대한민국에는 오랜 전통 문화와 첨단 하이테크 문명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수도 서울 한복판에는 500여 년 된 아름다운 궁궐인 경복궁이 있고, 또한 첨단 반도체, 자동차, 스마트폰, 가전제품 등을 전세계에 수출하는 여러 하이테크 기업들이 즐비합니다. 대한민국은 1950년 한국 전쟁의 큰 피해를 극복하고 불과 수십 년 만에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어 선진국 반열에 올랐습니다. 근래에는 한국 문화의 소프트 파워 또한 세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는 반만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한국의 저력과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강화도 마리산에는 약 4,350여 년 전 단군조선의 통치자 단군 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 있습니다. 한국의 역사 기록에 따르면, 당시 단군은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시아 일대를 통치했습니다. 대개는 한국의 역사를 '단군조선 - 북부여 - 고구려·백제·신라·가야 - 대진·통일신라 - 고려 - 조선 - 대한민국'으로 간추려, 약 반만 년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동북아시아 등에 산재된 여러 유적과 유물, 관련 기록을 깊이 연구하는 이들은 한국사의 기원을 6천 년 내지 1만 년으로 파악하고, 한국사의 뿌리는 인류 원형문화와 맞닿아 있다고 봅니다.

환국(桓國): 인류 시원문명과 광명 역사의 시작

세계 문명사의 시원은 환국문명 :: 월간개벽

존속 기간: 기원전 7197년 ~ 기원전 3897년 (총 3,301년, 7대 환인 치세)

역사적 전개: 한민족사의 시원은 지금으로부터 9,000여 년 전, 중앙아시아의 천산(파내류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인류의 뿌리인 환족(桓族)이 건국한 환국(桓國)에서 비롯됩니다. 환국은 총 12개의 국가로 이루어진 거대한 연방 국가였으며, 대우주의 조화 광명을 몸소 체득하여 다스리던 통치자를 '환인(Hwanin)'이라고 불렀습니다.

『삼국유사』 고조선조에 기록된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昔有桓國)'라는 고증과 『삼성기』의 '우리 환족의 나라 세움이 가장 오래되었다(吾桓建國 最古)'라는 기록은 인류 최초의 문명국가인 환국의 실재를 명백히 증명해 줍니다. 환국은 7대의 환인이 다스리며 3,301년 동안 평화롭고 조화로운 광명 문명의 터전을 유지하였습니다.

배달(倍達): 백두산 신시(神市) 개천과 홍익인간 정신의 선포

한韓문화타임즈 모바일 사이트, 우리는 배달의 민족이다

존속 기간: 기원전 3897년 ~ 기원전 2333년 (총 1,565년, 18대 환웅 치세)

역사적 전개: 기원전 6,000여 년 전 환국 말기, 중앙아시아 일대의 기후 변화로 인해 새로운 터전을 찾아 동방으로의 대이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환국의 마지막 통치자인 지위리 환인으로부터 정통성 계승의 상징인 '천부인(天符印) 3개'를 전수받은 환웅은 3,000명의 문명개척단을 이끌고 동방의 백두산으로 이동하였습니다.

환웅은 나라의 도읍을 신시(神市)에 정하고 나라 이름을 '배달(倍達)'이라 선포하였는데, 오늘날 한민족을 '배달민족'이라 부르는 역사적 유래가 되었습니다. 또한 이날을 '개천(開天)'이라 부르는데 바로 매년 10월 3일 개천절의 본래 유래입니다. 환웅이 하늘을 열고 신시를 세운 이 시기 배달국은 환국으로부터 전수받은 고귀한 건국 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 삼신의 가르침으로 온 세상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함)'과 '재세이화(在世理化)'의 정신을 선포하였습니다.

오늘날 월드컵때마다 붉은악마 응원단 상징으로 불리는 14세 자오지환웅(치우천황) 대에 이르러서는 도읍을 청구(靑丘)로 옮기고 서방으로 영토를 크게 확장하여 황하 중류 일대까지 영위하였습니다. 치우천황은 뛰어난 무력과 신교의 가르침으로 동방 천자문화를 전파한 제왕이자 병법의 비조로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단군조선(檀君朝鮮): 삼한관경(三韓管境)의 대동 통치

환단고기 북콘서트 단군신화와 고조선 단군왕검

존속 기간: 기원전 2333년 ~ 기원전 238년 (총 2,096년, 47대 단군 치세)

역사적 전개: 배달국 말기 국가의 질서가 혼란해지자, 단군왕검은 배달국의 구환족(九桓族) 전체를 하나로 통합하여 기원전 2333년 '조선(朝鮮)'을 개창하였습니다. 단군왕검은 송화강 유역의 '아사달(Asadal, 아침 햇살이 먼저 비추는 땅)'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고조선은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국가 경영을 위해 영토를 삼한, 즉 대단군이 직접 다스리는 진한과 부단군이 분할 지배하는 번한, 마한으로 나누어 다스리는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를 채택하였습니다. 고조선은 도읍지의 천도에 따라 세 단계의 역사적 왕조 변천 과정을 거쳤습니다.

청동기 문화를 배경으로 성장한 고조선은 기원전 108년 한나라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서 실재했던 고대 국가로, 그 역사적 실체 자체는 학계에서 널리 인정됩니다. 울주 반구천 암각화처럼 선사 시대 한반도 해양 사냥 문명의 흔적을 보여주는 유적들도, 이 고대 국가가 존재했던 시공간의 생활상을 짐작하게 해 주는 자료로 함께 이야기됩니다. 

오늘날 정부는 역사왜곡으로 인해 매년 10월 3일 개천절을 고조선의 건국을 기리는 국경일로 잘못 기념하고 있는데, 앞서 살펴본 것처럼 '개천(開天)'이라는 말은 본래 환웅이 하늘을 열고 신시를 세운 배달국의 개창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북부여(北夫餘)와 열국 시대의 개막

한韓문화타임즈 모바일 사이트, 4월 초파일은 본래 해모수의 북부여 건국일

존속 기간: 기원전 239년 ~ 기원전 58년 (총 181년, 6대 단군 치세)

역사적 전개: 기원전 238년, 47세 고열가단군을 끝으로 단군조선의 대단맥이 막을 내리자 한민족의 역사 주권은 기원전 239년 해모수가 창건한 북부여로 공식 계승되었습니다. 북부여는 고조선의 정통성을 온전히 물려받아 만주 진조선 영토를 다스리며 6세 고무서 단군 때까지 181년 동안 존속하였습니다.

이 시기 고조선의 서쪽 영토였던 번조선은 요서 지역으로 망명해 온 위만에 의해 일시 강탈당하였고, 한반도 남방 영토에는 마한, 진한, 변한의 남삼한과 낙랑국 등이 들어서면서 한민족사는 다채로운 자주 국가들이 경쟁하는 '열국(列國)시대'로 전격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사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정립

백남주의 한복이 있는 옛 그림 이야기(62)] 무용총 수렵도(舞踊寵 狩獵圖) < 백남주의 한복이 있는 그림 이야기 < 문화일반 <  문화/레저 < 기사본문 - 뉴스퀘스트

역사적 전개: 북부여의 주권 맥락은 고대 동방을 호령한 위대한 연방 국가인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사국시대로 화려하게 이어졌습니다. 북부여 시조 해모수의 4대손이자 동부여에서 성장한 고주몽은 북부여로 망명하여 고무서단군의 사위가 되었고, 북부여의 7세 단군으로 즉위한 후 국호를 '고구려(Goguryeo)'로 개정하여 독자적인 대제국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고구려는 북방 영토를 크게 넓히며 동북아의 강자로 성장했고, 고분 벽화 사방에 북두칠성과 청룡·백호·주작·현무를 새겨 넣어 독자적인 우주 방위 관념을 남겼습니다. 고구려와 더불어 해양 대연방을 이룩한 백제는 해양 대연방을 이루어 담로(擔魯) 체제를 통해 바닷길로 중국·일본과 활발히 교류하며 불교와 각종 기술을 전했고 신라는 천손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금관 문화를 꽃피우며 화랑도를 중심으로 국력을 키웠습니다. 가야제국은 고도의 제철 공학과 독자적인 문명을 이룩해 왜 열도의 고대 아스카 문명 형성에도 시원을 열어주었습니다.

남북국 시대: 대진(大震)과 통일신라의 공존

창세역사 성인열전 | 동방의 패자霸者, 대진국(발해) 멸망 원인 분석과 부흥 운동 :: 월간개벽

역사적 전개: 7세기 후반 고구려가 당나라와의 거듭된 전쟁 끝에 일시적으로 국권을 상실하자, 고구려의 위대한 유장(遺將) 대중상과 그의 아들 대조영은 고구려의 유민들을 규합하여 옛 영토를 무사히 회복하고 국호를 '대진(大震)'으로 선포하며 건국하였습니다. 역사에 '발해'로 널리 알려진 대진국은 독자적인 황제 칭호를 사용하였으며, 문물과 제도가 매우 발달하여 당대 동아시아에서 '해동성국(海東盛國, 바다 동쪽의 번성한 독자적 천자국)'이라 불릴 정도로 강력한 국력을 자랑하였습니다.

발해 건국의 주축이 되었던 말갈족에 대해서도, 이들을 한민족과 무관한 이민족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고구려와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동이(東夷) 계통의 동포 부족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이 대진국(발해)과 한반도 남부의 통일신라가 공존한 이 시기를 역사학에서는 '남북국시대'라 부릅니다. 이 대진국과 한반도 남방을 영위한 통일신라가 공존하며 한민족사는 장엄한 남북국시대의 번영기를 구가하였습니다.

고려 왕조: 일통삼한(一統三韓)의 다양성과 자주 독립

태백일사로 본 천자의 나라, 고려 - 상생출판 환단고기

926년 발해가 거란에 멸망한 뒤, 한민족의 정통은 왕건이 세운 고려로 이어졌습니다. 고려는 후삼국으로 나뉘어 있던 한반도를 재통합했는데, 이는 옛 삼한을 다시 하나로 잇는다는 '일통삼한(一統三韓)' 정신의 실현으로 이야기됩니다. 왕건이 백제 유민뿐 아니라 발해의 유민들까지 아낌없이 품은 이 재통일은 단순한 영토 전쟁의 승리를 넘어, 흩어진 동포를 하나로 되돌리려 한 국가 경영 철학의 발현이었다는 해석이 전해집니다.

고려는 아라비아 상인과도 교역할 만큼 개방적인 무역 국가였고, 이 시기 서방에 알려진 이름 '고려(Corea)'가 오늘날 한국을 가리키는 영어 이름 'Korea'로 남았습니다. 13세기 몽골 침입에 맞서 강화도에서 진도, 제주까지 저항을 이어간 삼별초의 대몽항쟁 역시 강대한 외세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은 고려의 자주적 기상을 보여주는 사례로 이야기됩니다.

조선 왕조: 문화와 과학적 발전 및 자주적 구국 의병

세종대왕 업적 영상 정리 / 한글날 조선 농업 학문 음악 과학 국방 : 네이버 블로그

1392년 이성계가 세운 조선은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아 500년 넘게 이어진 왕조입니다. 세종대왕 시대에는 한글 창제와 함께 자격루·측우기 같은 과학 기구가 만들어지며 문화적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관군만이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의병들이 국토를 지켜냈고, 이순신 장군이 이끈 수군은 거북선과 판옥선으로 여러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조선 말기에는 고종 황제는 마침내 대우주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독립 천자국의 정통 위상을 담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포하였습니다. 19세기 말 동학 농민들은 신분 차별과 외세 간섭에 맞서 삼례와 우금치에서 무장 봉기를 일으켜, 이후 한국 근대사에서 자주와 평등을 향한 중요한 움직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독립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1910년 일본에 국권을 강제로 빼앗기며 35년간의 식민 지배가 시작되었지만, 한국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했습니다. 1907년에는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나랏 빚을 갚으려 한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고, 1919년 3월 1일에는 전국에서 평화적인 독립 만세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같은 해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처음 사용하며 왕이 아닌 국민이 주권자가 되는 공화제를 채택했는데, 이는 잃어버린 국권을 되찾는 것을 넘어 모든 국민이 저마다 존엄한 주권자로 서겠다는 오래된 이상을 되살리려 한 선택이었다는 해석이 전해집니다. 1940년에는 임시정부 산하에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어 무장 독립운동을 이어갔고, 1945년 8월 15일 마침내 광복을 맞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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