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정신문화 (History & Spiritual)

역사와 정신문화 (History & Spiritu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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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대한민국

문화 다양성 존중과 종교

DIVERSITY & RELIGION — 포용적인 다문화 사회와 신교의 맥락

포용적인 다문화 사회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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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 결혼 이민자 등의 증가로 다문화 사회로 빠르게 도약하고 있습니다. 2024년 기준 등록 외국인은 약 265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5.2%에 이르며, 다문화 가구는 약 41만 6천 가구에 달합니다. 정부는 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존엄하게 안착할 수 있도록 다문화 가정 자녀 지원과 교육 평등 보장 등 차별 없는 포용적 사회 안전망을 다각도로 넓혀 나가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단일 민족 서사가 강했던 이 사회가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배경의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로 재편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변화는 앞으로 한국 사회가 풀어가야 할 중요한 과제이자 기회로 함께 논의되고 있습니다.

신라의 학자 최치원은 “우리나라에 깊고 오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風流)라 한다”는 말을 남겼는데, 이 풍류 정신은, 자연과 인간을 이분법적으로 나눠 갈등하게 만들던 서구 물질 철학의 한계를 넘어, 온 인종과 국경을 넘어 평화롭게 녹아들게 만드는 다원주의 다문화 시대의 가장 유연하고 따뜻한 상생과 포용의 거대한 정신적 토대입니다.

한국의 종교 다원주의와 신교

소도, 경당이란 무엇인가? - 증산도(Jeung San Do) 공식 홈페이지

한국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종교 다원주의 사회로, 개신교(19.7%), 불교(15.5%), 가톨릭(7.9%) 등이 평화롭게 공존합니다. 대한민국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맥맥히 살아 숨 쉬어 온 전통 신앙문화는 신교(神敎) 이며, 불교, 유교, 기독교 등 외래 종교(역사 약 3천~4천 년)가 한반도에 유입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그러나 신교는 근대화 과정에서 미신이나 샤머니즘으로 치부되면서 전통 무속, 무당으로 민간에서 내려오다가, 최근 <파묘>·<케이팝 데몬 헌터스> 등의 흥행과 함께 감정을 다루는 오래된 문화적 자산으로 재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인에게 뿌리 깊은 사상은 신교에서 유래된 불교와 유교 이며, 한국 유적과 문화재의 절반 이상이 불교나 유교와 관련돼 있습니다. 불교는 서기 372년에 전래되었으며 전국에 수만 개의 사찰이 있고 석굴암과 불국사 같은 건축 유산을 남겼으며, 유교는 효(孝)와 예(禮)에 기초한 사회 윤리를 다지는 데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유교는 조선(1392~1910)의 국교로, 종교라기보다는 충효와 조상 숭배를 중시하는 윤리적 행동 강령에 가깝습니다. 조선은 유교의 개념을 토대로 백성의 생활 예절과 풍속을 정착시키기 위해 행동강령 을 마련했으며 신하가 왕에게 충성하는 ‘충’, 부지런히 일하고 자식이 부모님을 잘 모시는 ‘효’, 남편과 아내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인 ‘열’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천주교는 조선 시대 후기 베이징에 갔던 사신과 밀입국한 서양 신부에 의해 전해졌습니다. 초창기 선교 활동이 박해를 받았지만 서민들에게 급속히 전파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순교자가 많아 한국은 세계에서 네 번째로 성인을 많이 배출한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개신교 역시 조선 말 학교와 병원을 중심으로 한국 전역에 널리 퍼졌습니다. 한국에는 기독교 정신을 가르치는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는 물론 병원도 많이 있는 현실입니다. 이슬람교는 1955년 처음으로 한국이슬람교협회가 창립돼 최초의 한국인 이맘(이슬람 교단 지도자)을 선출하고, 1967년 한국이슬람교중앙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이 밖에 민족의 고유 종교로 불리우는 증산도, 원불교, 천도교,  대종교 같은  종교가 있는데,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 이후 고대사가 왜곡이 되면서 동시에 근대사도 왜곡이 되는 과정에서 한국의 올바른 정통 민족정신이나 신앙문화가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못한 상황입니다.  

한민족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고려 시대까지 신앙문화의 핵심으로 이어지던 신교는 성리학에 함몰된 조선 왕조에 이르러 점차 쇠락하고 잊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신교는 근대 이르러 동학의 개창과 함께 시천주(侍天主) 신앙과 새로운 문명 개벽의 비전으로 부활하였습니다. 이후 일제의 무력 진압으로 해산이 되다가 보천교로 이어지며 1920년대 당시 600만명이 넘는 신앙인을 보유하면서 항일 민족운동과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사령탑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들은 사실 한국인들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일제가 자행한 민족정신 말살 정책 때문입니다. 광복 80년이 지났지만, 일제의 탄압과 식민사학의 잔재로 말미암아 보천교의 항일투쟁사는 아직까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보천교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일제의 압제에서 풀려난 이후 우리는 6.25전쟁의 아픔과 숱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보천교는 이 땅에 신교를 부활시키고 상제문화를 다시 일으킨, 민족의 정신적 지주였습니다. 과거 신교의 부활을 꿈꾼 동학과 보천교의 꿈은 현대에 와서 증산도(Jeung San Do)의 무극대도로 계승되었습니다.

9,000년 전 환국 이래 한국인의 가슴속에는 대자연의 우주적 신성한 삼신의 기틀 속에서 도를 닦고 삶을 영위하던 시원(원형) 문화인 신교(神敎)가 면면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신교는 개인의 기복 신앙에 머물지 않고 신의 뜻과 가르침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인간 생활의 중심으로 삼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종교의 범주를 넘어 정치, 종교, 사회, 문화 등 공동체의 삶을 이끌어가는 생활문화 전체를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신교는 한민족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한국인의 정신세계에 영감을 불어넣고 사고방식을 규정해 온 원형문화이자 인류 시원문명의 모체 종교입니다.

신교문화에서 인식한 신神의 세계

죽으면 어떻게 될까, 전생은 존재할까 궁금하다면-라이프ㅣ한국일보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사후세계는 어떤 모습인지 명쾌하게 밝힌 진리는 아직 없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한 번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정말로 영혼이 있을까?”

상제님과 천지신명, 조상님을 받들던 우리 선조들은 신교의 세계관으로 신의 세계를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속담이나 생활언어에는 영적 세계와 귀신에 관련된 것이 많습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곱다.”
“저 사람 귀신같다.”(귀신같이 잘 알아맞힌다.)
“원한이 구천에 사무친다.”
“신명난다.”
“혼비백산하다.”

한국인은 인간 세계인 이승과, 인간이 죽어서 영혼으로 살아가는 저승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 자연스럽게 언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끝이 아니라 영적 존재인 신명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천상 신명세계가 있습니다. 죽은 후에 새로 태어난 신의 본성이 밝기 때문에 ‘신명’이라는 말에 밝을 명明 자를 붙인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삶과 죽음이란 무엇일까요?

사람이 지상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하면, 혼은 육신을 떠나 천상에 올라가 신명으로서 새로운 삶을 삽니다. 마치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육체를 벗어나서 천상 신명으로 태어나 제2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 살다 간 모든 인물은 천상에 조상 선령신으로 존재합니다. 사람은 육신이 있는 사람이요, 신명은 육신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삶과 죽음의 실상입니다. 이 우주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눈에 보이는 인간 세계와 보이지 않는 신명 세계가 공존합니다.

한국인은 예로부터 이런 사실을 잘 알았기에 조상 제사를 지극한 정성으로 모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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